목록
이전글 다음글
예술의 경계 : 차용, 표절인가? 창작인가?
이혜경
KakaoTalk_20240122_112650811.jpg

David Salle, < Tree of Life, Gender Roles >, 2023
우리는 인용과 편집으로 새로운 창작이 나오는 시대에 살고 있다. 많은 자료와 정보를 수집하고 종합하여 중심 주제나 콘셉트로 서로를 연결해서 새로운 의미나 아이디어를 창조한다. 어떤 예술 분야든 기존에 나온 창작물을 모티브로 하여 만든 작품들이 곳곳에서 나온다. 현대사회에서는 창작물들의 과잉생산으로 기존에 가지고 있던 독창성을 새롭게 재배치하여 또 다른 창작을 만들어 내는 일이 다반사다. 이런 차용의 범위는 대중들이 어디까지 이해할 수 있을까.
 
1980년대 미국 포스트모더니즘 미술의 대표적인 작가 데이비드 살레(David Salle, 1952- )의 < 생명의 나무, Tree of life > 시리즈는 차용, 겹치기, 병치를 통해 모호하고 부조화한 작품을 의도한다. 사회·문화의 짜깁기이며 편집의 표현으로 복제, 모조로 이루어진 이미지임에도 불구하고 대중들의 관심을 크게 받고 있다.
 
“피터 아르노는 신이 내려준 것처럼 내게 왔다.”

데이비드 살레가 2020년부터 작업한 < 생명의 나무 > 시리즈는 100년 전 뉴요커의 잡지 표지를 그린 피터 아르노(Peter Arno, 1904-1968)의 삽화를 차용 했다. 당시 아르노의 삽화는 상류층의 사회를 겨냥한 풍자로 한 줄짜리 지문이 있는 만화다. 대공황을 거치며 지성인들의 열광적 지지를 얻어, 플레이보이 · 재벌 · 쾌락주의자 · 뉴욕 엘리트의 위선을 풍자적으로 폭로하였고, 죽기 전까지 101개의 만화를 잡지에 실었다.
 
< 생명의 나무 >는 시간과 공간이 다른 이미지를 나란히 연결하고 있다. 나무의 뿌리가 땅을 뚫고 캔버스 아래로 내려간다거나 혹은 캔버스 상단에는 현대 풍경을 그리고아래 캔버스에는 상단의 근간이 되는 과거와 역사를 함축적으로 담고 있다.

작품의 형식은 위아래로 연결하는 형식을 쓰면서 중층구조를 이루고 있다. 이것은 르네상스 시대 두 폭 이상의 제단화와 같다. 예를 들어 보쉬의 < 쾌락의 동산 >에서 볼 수 있듯이 과거(천국), 현재(이상), 미래(지옥)의 세 부분으로 나뉘어 그린 것처럼 말이다. 데이비드 살레는 당시의 제단화 형식을 통해 두 개 패널이 서로 대항하게 되면서 작품에 힘이 생겨난다고 보았다. 물론 하나의 패널에 모두 표현할 수 있었지만, 구획을 나누게 되면 긴장감을 유도한다고 보아, 작가가 의도한 대로 2, 3개의 캔버스 혹은 하나의 캔버스도 분할 하는 ‘구획’을 작품의 중요한 요소로 여겼다.

작품에는 구상과 추상이 한 화면에 공존한다. 또 고급문화와 저급문화, 구상적인 것과 추상적인 것, 상반되는 요소, 서로 연관이 전혀 없는 요소를 배치한 것이다. 화면을 이분하여 중앙에 나무를 배치하고 양옆으로 인물들을 배치하는 구도이다. 이 구도는 마치 연극을 보는 듯하다. 상단의 그림에는 여러 행동이 복잡하게 나타나고, 하단의 그림에는 평론의 성격을 추상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그림의 하단에는 추상적인 그림이 상단의 그림을 보완하는 역할을 한다. 관람자는 예상할 수 없는 우연적인 이미지의 등장으로 연관성을 찾기가 쉽지 않다. 연결되지 않는 여러 가지 이미지들이 혼란스럽게 하기도 한다. 이러한 그림의 모호함과 부조화로 인하여 명확한 해석을 하기가 어렵지만 한편으로는 열린 해석을 할 수 있다는 매력도 있다. 시간과 공간이 다른 이미지를 나란히 두면서 인공적인 재생산이 주는 신선함 또한 크다. 관객의 시선이 화면 전체에 고르게 머물러 자세히 관찰하고 오랜 시간 관조하도록 유도하기 때문에 흥미로운 작품이다.
 
미국의 현대 미술가 데이비드 살레는 대중적인 도상과 유명 만화를 차용하여 이미지들의 병치기법을 이용한 돌연변이적인 연출을 구축했다. 차용은 표현 방식의 단순한 모방을 넘어 자기화로 새롭게 재탄생시킨 창작하기의 핵심이며 창조를 위한 영감의 원천 중의 하나가 된다. 차용된 이미지와 형식, 구성 등을 재맥락화하는 창작 방법은 현대미술의 주요 전략이다. 그러나 표절과 예술의 경계는 원작을 드러내놓고 빌려온 것과 의도적으로 감추고 도용하는지에 따라 예술과 표절을 구분할 수 있을 것이다. 원작의 이미지를 빌려와 작가만의 의도대로 편집의 표현을 한다는 것에 대해서도 여전히 논란거리가 된다. 하지만 ‘고급예술과 대중미술 중 무엇이 예술이다.’라고 정의할 수 없듯이 차용을 표절이라고만 말할 수 없다. 작가의 의도와 상관없이 대중의 공감을 얻는 감성을 자극하는 요소가 있다면 표절과 예술의 경계에 서 있을지라도 예술이 아니라고 볼 이유가 없다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단순한 모방을 뛰어넘어 기존에 존재하는 작품이 가진 매력과 다른 개념을 창조해 낼 때 그 작품의 가치는 더욱 빛날 것이다. 이미지의 차용이 단순하게 시각적인 형상의 모방이 아니라 새로운 개념을 만들어 낼 때 예술적 가치가 생겨날 것이기 때문이다.

이미지 출처

https://ocula.com/art-galleries/lehmann-maupin/artworks/david-salle/tree-of-life-gender-rol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