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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생명 예술: 기술과 생명의 경계를 넘어 Ι
주경은(노드 NODE)
본 글은 Ι,Ⅱ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Ι은 ‘참고문헌’의 연구들을 종합하여 작성되었습니다.
 
근대 과학 시대는 사물을 간단한 구성 요소로 나누어 그것들을 종합하면 전체를 파악할 수 있다는 환원주의로 이해되어왔다. 그러나 환원주의적 관점에서는 설명할 수 없는 복잡한 현상들이 드러나면서, 새로운 과학적 접근의 필요성이 대두되었다. 인공생명은 이러한 복잡성의 과학으로 탄생했다. 1990년대부터 컴퓨터 과학의 한 분야로 자리 잡은 인공생명은 자연생명의 행동을 모방하는 인공 시스템을 연구하며 이론 생물학에 기여 한다.* 이 연구는 ‘우리가 아는 생명체’를 ‘존재 가능한 생명체’라는 보다 광범위한 개념을 탐구하며, 물리 세계와 생명 세계를 통합적으로 이해하려는 근본적인 목적을 가지고 있다.
 
예술의 영역에서 인공생명은 1987년 제1회 인공생명 컨퍼런스를 계기로 생물학, 컴퓨터과학과 예술의 연결에 관심을 가졌던 디지털 매체 예술가들에 의해 도입되기 시작했다. 인공생명 연구가 과학적인 인공물을 만들어낸 결과물이라면, 인공생명 예술이 창출한 대상은 단순히 인공물이 아니라 각 작가들의 예술적 욕구와 창작 행위로 만들어진 예술적 대상이라 할 수 있다. 인공생명 기술을 활용한 작품들은 다양한 방식을 통해 생명 패턴을 재현한다. 초기접근 방식 중 하나는 크리스토퍼 랭턴(Christopher Langton)의 셀룰러 오토마타(Cellular Automata)로, 간단한 규칙을 반복 적용하여 생명의 복잡성을 모방하는 시스템이다. 또 다른 방식은 식물의 성장 과정을 수학적으로 모델링 하는 린덴마이어(Aristid Lindenmayer)의 L-시스템(Lindenmayer system)으로, 알고리즘을 통해 복잡한 생명 패턴을 표현하는데 사용된다. 이외에도 다윈의 진화이론에 기반한 진화알고리즘은 생명체가 최적화된 상태로 진화하는 과정을 시뮬레이션한다. 이러한 기술들을 통해 예술가들은 새로운 형태의 생명을 창조하고 표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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린덴마이어의 L-시스템
인공생명 예술은 단순히 새로운 형태의 생성, 창발이 아닌 가능한 생명 형태의 미적 창조다. 인공생명 예술에 관한 책 『메타창조, 미술과 인공생명(Metacreation, Art and Artificial Life)』(2004)에서 저자 미첼 화이트로(Mitchell Whitelaw)는 인공생명 예술을 “미술가들이 인공생명의 개념과 기술을 적용하여 과학적 산물이 아닌 예술적 대상물로 만든 것이며, 예측 불가능하고 자율적이며 살아있는 것을 생각나게 하는 미술”이라고 정의하였다. 또한, 인공생명 예술을 각각의 영역으로 나누어 제시한다.

첫 번째는 가장 초기의 형태로 인공진화의 과정을 강조하는 컴퓨터 안에서 배양되는 방식으로 칼 심스(Karl Simms)의 〈팬스퍼미아 Panspermia〉(1990)가 있다. 팬스퍼미아는 교배, 돌연변이와 같은 진화 매개변수를 이용해 몇 가지 규칙만으로 진화를 시뮬레이션하는 프로그램이다. 작품은 가상세계에서 자가 증식하는 시스템을 통해 외계행성에 떨어진 씨앗이 상호교배와 돌연변이를 거쳐 다양한 식물 종으로 진화하는 과정을 애니메이션으로 표현한다. 인공진화를 통해 생성된 식물 중 많은 것이 지구에 존재하는 형태와 유사하지만, 지구에서는 볼 수 없는 독특하고 새로운 형태의 식물들도 다수 등장한다. 심스의 작품은 린덴마이어의 기법을 적용해 발아, 가지 뻗기, 개화와 같은 식물 성장의 단계를 상징적으로 표현한다. 매개변수의 값들을 조정하여 적절한 이미지를 선택하는 과정을 반복함으로써 낯선 형태의 나무를 창조하고, 가상 생명체의 성장과 진화 과정을 예측할 수 없는 방식으로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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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arl Simms, 〈Panspermia〉, 1990
심스의 작품이 프로그램 내에서 진화 과정을 독립적으로 보여주는 것과 달리, 두 번째 접근 방식은 환경과의 상호작용을 통해 예술의 영역을 확장한다. 크리스타 좀머러(Christa Sommerer)와 로랑 미뇨노(Laurent Mignonneau)가 생태학자 토마스 레이(Thomas Ray)와 공동으로 제작한 〈에이볼브 A-Volve〉(1994)는 유기체와의 복잡한 상호작용을 모방하는 사이버 자연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에이볼브〉는 사용자, 인공생명체, 그리고 웹 인터페이스 간의 다차원적 상호작용을 가능하게 하는 작품이다. 작품에 사용된 인공생명 기술인 티에라(Tierra, 스페인어로 '지구'를 의미)는 진화, 돌연변이, 자기복제, 그리고 재조합을 가능하게 하는 진화알고리즘을 기반으로 하며, 이를 통해 실리콘 환경에서 진화와 생태적 역학을 실험적으로 탐색한다. 사용자가 웹 인터페이스를 조작하면 유전자 교환과 변이가 일어나고, 새로운 개체가 생성되며, 사용자는 이 과정에 직접 참여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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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rista Sommerer, Laurent Mignonneau, 〈A-Volve〉, 1994
마지막으로, 인공생명과 기계공학이 결합 된 로봇 형태의 작품들은 실제 공간에서 스스로 움직이며 살아있는 듯한 인공생명을 구현한다. 사이먼 페니(Simon Penny)는 한정된 스크린 기반의 작품을 넘어서 신체의 공간에서 발생하는 운동과 감각 차원의 상호작용에 주목했다. 그는 행동이 인공생명 예술의 인터페이스 설계와 미적 결정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 요소라고 강조했다.

〈가벼운 발작 PetitMal〉(1993-5)은 사이먼 페니의 대표적인 로봇 형태 작품으로, 관객의 신체와 작품 자체가 함께 상호작용하며 직접적인 신체적 접촉을 유도한다. 작품은 관람자가 낯선 기계와 마주하게 함으로써 기계 시스템과의 문화적 상호작용을 통해 새로운 미적 영역을 경험하게 한다. 사이먼 페니는 이를 ‘행동의 미학’으로 칭하며, 신체 공간에서 일어나는 상호작용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그는 “인공생명은 과학기술의 산물로서, 세계 속으로 통합되어 문화적, 사회적 공간에서 인간과 환경과 상호작용하는 행위자가 된다.”고 설명한다. 이러한 접근은 인공생명이 단순한 기술적 산물이 아닌 사회적 및 문화적 맥락에서 활동적 역할을 수행할 수 있음을 시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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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imon Penny, 〈PetitMal〉, 1993-5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인공생명 예술은 전통적인 생명의 재현 방식을 넘어서 새로운 형태의 생명을 창조하고 미학적으로 표현하는 데 집중한다. 이는 단순한 외적 모방이 아니라 인공적인 시스템을 통해 생명의 창발과 환경적 적응 과정을 탐구하는 것이다. 이러한 작품들은 기계적 환경에서 자율적으로 존재하면서도, 관람객의 참여에 의해 완성되는 상호의존적 관계를 보여주며, 관람 방식의 변화를 가져온다. 작품 속 생명체들은 생태계에서의 진화처럼 예측 불가능한 방향으로 발전하며, 이 과정에서 관람자의 개입은 중요한 역할을 한다.
최근의 인공생명 예술은 작품이 단순히 이미지 변형을 넘어 관객과 내용을 공동으로 창조하는 것을 요구한다. 이는 작품 내 대상에 생명 적 정체성이 부여되어 실체로 변화하고 있음을 나타낸다. 인공생명 예술의 목적은 작품이 생명인지 아닌지를 논하는 것이 아니라, 인공생명 기술의 핵심 속성인 창발성을 바탕으로 스스로 발생하고, 창발적으로 행동하며, 외부 요소들과 상호작용하여 진화하는 ‘살아있는’ 예술 작품을 창조하는 데 있다.**

인공생명 예술은 인간의 개입을 필요로 하여 관람자에게 창발적 행동을 경험하게 함으로써, 인공생명 연구의 핵심 목표인 단순함에서 복잡함으로의 전환, 즉 아래에서 위로의 창발성을 구현한다. 기계와 인간 사이의 친밀한 상호작용을 통해 자연과 인공의 경계를 허물고, 가상의 자연과 물리적 자연 사이의 긴장을 해소하는 매개체로 기능한다. 디지털 아트 비평가인 크리스티안 폴(Christian paul)은 “컴퓨터 속 인공생명은 인간의 본질적인 부분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주고, 그 과정에서 인간의 사고방식의 새로운 변화가 이루어질 것이다.”라고 언급했다. 이러한 점은 인공생명이 전통적인 생명의 개념에 어떤 변화를 가져왔는지를 명확히 보여준다.

* 복잡성이란, 다양한 요소들이 상호작용하며 얽히고설킨 상태를 의미한다. 따라서, 복잡계는 상호작용하는 다수의 단순 요소들로 구성된 시스템으로 볼 수 있다. 세포 한 개체에서부터, 그 세포들로 구성된 인간의 신체, 그리고 그런 개개인들이 모여 이루는 사회와 국가까지, 이 모든 것은 복잡계의 예라 할 수 있다. 복잡계 연구는 생명 현상을 포함한 여러 과학적 미스터리를 풀어낼 수 있는 잠재력을 지니며, 단기적 예측을 통한 실용적 응용의 가능성 덕분에 최근 들어 그 중요성이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스티븐 레비, 김동광 역, 『인공생명』, 사민서각, 1989, pp. 25-26.
** 이주연, 「디지털 매체예술에서 인공생명과 창발성에 관한 연구-인공생명 예술을 중심으로」, 홍익대학교 대학원 예술학전공, 석사학위논문, 2006, p. 2.

참고 문헌

​김진엽, 이재준 「인공생명과 예술」, 『인문논총』, 제 58집, 2004, pp. 117-143.
스티븐 레비, 김동광 역, 『인공생명』, 사민서각, 1989.
임경호,윤준성, 「인공생명 예술의 특성:VIDA의 작품 분석을 중심으로」, 『한국콘텐츠학회논문지』, 제 11집, 2010, pp. 193-201.
​이주연, 「디지털 매체예술에서 인공생명과 창발성에 관한 연구-인공생명 예술을 중심으로」, 홍익대학교 대학원 예술학전공, 석사학위논문, 2006.

이미지 출처 

Karl Simms, 〈Panspermia〉, 1990: https://archive.org/details/sims_panspermia_1990
Christa Sommerer, Laurent Mignonneau 홈페이지:  http://www.interface.ufg.ac.at/christa-laurent/WORKS/artworks/A-Volve/videos/A-Volve.mp4

*본 글은 Ι,Ⅱ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아래 링크를 통해 Ⅱ로 이동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