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대구미술관의 < 팝/콘 >전에서 < 본시리즈 Born-Series >(2018)를 선보인 김승현은 미술작품의 존재 목적과 본질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 작가이다. 그는 팝송에서 차용한 영어문장을 패러디해 설치작업과 캔버스에 텍스트를 ‘찍어내는’ 작업 방식을 선보인다. 캔버스에 텍스트를 찍어내는 작업의 경우, 관람자는 가장 먼저 캔버스 위에 적혀진 영어 문장의 ‘텍스트’를 마주하게 된다. 그들은 텍스트를 봄으로써 그것이 지닌 의미들을 해석을 하게 되는데, 이는 이내 그들의 머릿속에서 일련의 이미지들로 변환되는 경험을 동반한다. 즉 관람자는 ‘텍스트’를 통해 결과적으로 자신이 산출해 낸 ‘이미지’로부터 작품을 인식하게 되는데, 이는 ‘이미지’나 ‘한국어 문장’을 제시했을 때와는 분명 다른 효과를 준다는 점이 흥미롭다. 이미지와 한국어 문장이 갖는 직접성과 미묘한 의미구조의 차이를 피하기 위해 영어문장을 사용함으로써 관람자 스스로가 의미를 파악하게 만들고 더 나아가 이미지를 만드는 재맥락화의 과정을 유도하는 것이다. 영어를 읽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그의 작품들이 하나의 이미지 덩어리로 인식되는 것도 같은 원리이다.
김승현 작가는 2012년부터 삶과 미술의 관계 및 미술이 작동하는 이유를 탐구하는 < 본시리즈 >를 선보이고 있다. 기존의 < 스트럭쳐 시리즈, Structure-Series >(2016)가 사회구조가 지닌 문제들을 꺼내 보이는 작업이었다면, < 본시리즈 >는 그 고민의 방향이 ‘구조’라는 사회적 차원에서 미술작품의 존재 이유라는 다소 본질적인 차원으로 옮겨간 것이다. 대구미술관에서 선보였던 < 본시리즈 >는 ‘내 거실이 생긴다면 내가 좋아하는 가구들과 작품들로 채우고 싶다.’는 작가의 소망과 미술관의 소장품이 만나 탄생한 작품이다. 상상 속에만 존재하던 컬렉터의 거실 모습을 시각화하여 선보임으로써 일종의 가상적 개인이 되어보는 경험인 셈이다. 작가는 < 팝/콘 >전에서 두 개의 공간을 연출하였는데, 공간 속 작품들은 대구미술관의 소장품들 중에서 작가의 취향이 십분 반영된 것이며 각각의 공간은 디자이너가 제작한 브랜드 가구들과 함께 배치되어 있다.
첫 번째 공간은 ‘일본’이라는 공통점으로 엮어낼 수 있다. 20세기 후반부의 일본에 나타난 미술 경향인 ‘모노하(物派)를 이끈 이우환의 < 조응, Correspondance >(2004)과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 광주민주화운동과 같은 시대의 격변을 몸으로 겪으며 창조해낸 윤형근의 < 암갈색과 군청색의 블루 #2 (Burnt umber and Ultramarine) >(2003)은 대구미술관의 소장품이다. 미술관의 소장품 외에 김승현 작가가 실크스크린 기법으로 모눈종이를 찍어내고 붓으로 선을 그어 완성한 작품들도 있다. 일본 출신의 미술가 온 가와라(On Kawara)의 < 오늘 연작 >과 이와 같은 방법으로 제작한 ‘일본의 앤디워홀’으로 불리우는 무라카미 다카시(Takashi Murakami, 1962- )의 연작에 착안해 김승현 작가가 재구성한 것이다. 벽면에 부착된 작품들을 마주보며 일본의 디자이너인 오키 사토(Sato Oki, 1977- )가 설립한 넨도(Nendo)와 프리츠한센이 협업해 제작한 N01 체어가 놓여있다.
두 번째 공간도 첫 번째 공간과 마찬가지로 대구미술관의 소장품 중에서 작가의 취향으로 선별된 작품들이 배치되어 있다. 흔하디흔한 코카콜라와 캠벨 수프를 미술작품으로 격상시킨 앤디 워홀(Andy Warhol, 1926-1987)과 ‘미술은 아름다워야 한다.’는 전통적인 관념을 아방가르드(avant-garde)한 작업으로 뒤집는 데미안 허스트(Damien Hirst, 1965- )의 < 죽음의 공포, The Fear of Death >(2007), 비디오라는 새로운 매체로 실험적인 작업을 했던 백남준의 (1987), < 다시 태어나다, Born Again >(1991)가 위치해있다. 매끄러운 질감으로 보는 이들의 시선을 사로잡고 소장을 하고 싶은 욕구를 불러일으키는 아르네 야콥센(Arne Jacobsen, 1902-1971)의 계란의자(egg chair)와 유에스엠 할러(USM HALLER)의 가구를 더해 컬렉터의 근사한 거실을 완성시켰다. ‘취향의 반영’이라는 이 공간의 정점을 찍는 작품은 에드 루샤 (Ed Ruscha, 1937- )의 (1998)이다. ‘비버리힐즈의 아이들’과 같은 외화 드라마를 보며 유년기를 보냈던 김승현 작가는 드라마 속에 등장하는 활기찬 인물들과 광택이 많이 나는 사물들의 질감들에 매료되었고, 어렸을 적 보았던 드라마에서 느꼈던 감정과 취향의 연장선을 에드 루샤의 작품에서 발견했다고 한다. 두 공간을 구성하는 작품들은 김승현 작가가 평소 좋아하는 작가들의 작품이라는 점에서 컬렉터라는 가상의 개인의 공간을 멋지게 꾸밀 수 있는 기준은 바로 ‘취향’에 있다는 것이 더욱 더 명확해진다.
마지막으로 작가는 대구미술관의 소장품을 그의 텍스트 작업과 함께 배치함으로써 ‘이 멋진 작품들처럼 나의 작품도 근사한 공간에서 사람들의 사랑을 받으면 좋겠다.’ 라는 소망을 드러내었다. 두 번째 공간에 위치한 < 본시리즈 >는 시트지를 활용해 캔버스에 텍스트를 찍어낸 작품인데, 이러한 그의 작업 방식은 앤디 워홀의 형식을 연상케 한다. 김승현 작가는 자신의 텍스트 작업에 ‘아방가르드체’를 폰트로 사용하였다. 그가 연출한 공간 속에 등장하는 작품들 모두 당시 새로운 매체와 작업 방식을 사용함으로써 기존의 미술의 의의와 본질에 대한 새로운 질문을 던졌다는 데 있어 그 ‘아방가르드함’을 떠올려 볼 수 있다. ‘아방가르드함’이란 기성의 예술 관념이나 형식을 부정하고 새로운 예술을 주장하는 것이기에 ‘미술은 아름다워야 한다.’ 와 같이 오랫동안 미술의 본질과 목적이라 간주되었던 것에 물음표를 던지는 김승현 작가의 작업과도 연결되는 지점이다. 그는 영국의 록밴드 퀸(Queen)의 의 가사를 차용한 < 본시리즈 >의 텍스트 작업에서 미술작품을 화자로 설정해 ‘I WAS BORN TO DECORATE YOUR LIVING ROOM WITH YOUR JOSEPH BEUYS AND YOUR NAM JUNE PAIK AND YOUR DAMIEN HIRST AND YOUR CAMPBELL’S SOUP CANS AND YOUR ARNE JACOBSEN EGG CHAIR AND YOUR USM HALLER’(나는 요셉 보이스와 백남준과 데미안허스트와 앤디워홀의 캠벨수프와 아르네 야콥센(Arne Jacobsen)의 계란의자와 유에스엠 할러(USM HALLER)와 함께 당신의 거실을 장식하기 위해 태어났다.)’라고 말하고 있다. 미술사에 한 획을 그었다는 이들의 작품들이 갖는 어떠한 서사나 의미를 찾기보다도, 작가로서 자신이 잉태한 작품이 거장들의 작품들과 함께 멋진 곳에서 사랑받을 수 있기를 바라는 소망을 담아낸 것이다. 누군가의 취향이 흠뻑 반영된 집이라는 공간에서 보는 이로 하여금 충만한 만족감을 주는, 즉 작품은 사랑받기 위해 탄생했다는 미술작품의 목적성에 대한 작가의 고민의 결과를 재치 있게 보여준다.
김승현 작가의 < 본시리즈 >는 < 팝/콘 >전의 마지막 섹션에 배치되었는데, 이는 전시장의 동선에 따라 작품을 관람하던 관람자들이 미술관이라는 공간에서 느꼈을 (작품이 지니는 어떠한 의미나 목적을 찾아야 할 것 만 같은) 은근한 부담과 스트레스를 덜어주는 장치로 작용한다. 그의 작품은 미술작품이라는 것이 세계에 대한 무거운 성찰을 담아야만 하는 것이 아닌 ‘그저 한 사람의 취향을 만족시키기 위한 목적이어도 괜찮겠구나.’라는 생각을 하며 전시장을 떠날 수 있게 만들었다. 이는 바로 김승현 작가의 작품에 의해 미술작품이 지닌 본질적 의미가 관람자 개개인에 의해 새롭게 편성되는 순간이다.
앞서 언급한 미술작품의 본질에 대한 이야기로 다시 돌아가 보자. 작가는 < 팝/콘 >전이 전시되었던 대구미술관의 제1전시실의 출구의 벽면에 < 기능 버튼 >을 부착해 그 답을 대신하고 있다. 뱅앤올룹슨(Bang&Olufsen)사의 전화기의 버튼에서 착안한 < 기능 버튼 >은 ‘Enter’, ‘Pause’, ‘Memory’, ‘Redial’ 이라는 각각의 기능이 담긴 버튼을 확대해 전시장 출구에 부착해 놓은 작품이다. 그는 이 작품을 통해 관람객이라는 한 명의 주체가 미술관이라는 공간에 들어가고(Enter),멈추어 서서 작품을 보고(Pause), 작품 또는 작품이 전달하는 메세지들을 기억하고(Memory), 마지막으로 이를 자신의 삶의 순간순간마다 적용하고 재맥락화(Redial)하는 것이 작품의 본질임을 은유하고 있다. 미술가 최정화는 “Your Heart is My Art. 당신의 생각이 올바릅니다. 자신감만 가지세요. 미술사도 필요 없고, 설명서도 필요 없고, 현재 당신이 느끼는 그것을 기념합시다.”라고 말했다. 결국 미술작품의 목적은 주체인 ‘나’의 일상의 공간에서 나와 함께 머물면서 감각을 충족시킬 뿐 아니라, 생각을 환기하는 데에 도움을 주며 더 나아가 나의 삶의 목적을 찾는 긴 과정 중에도 함께 하며 상호작용하는 것에 있지 않을까?